정산 수익 없어도 정산자료 제공 의무 위반하면 전속계약 해지사유 – 걸그룹 ANS 사례



  • 글 : 임용수 변호사 

☞ 신뢰관계를 파탄시킬 정도의 정산의무 또는 정산자료 제공 의무 위반이 있다면 전속계약 해지사유에 해당한다. 걸그룹 ANS가 소속사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 분쟁에서 승소한 사례를 소개한다.  

【사실관계】

ANS 멤버들은 연예기획사 에스엔에스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고 2019년 9월 데뷔했다. 원래 5인조 걸그룹(리나, 로연, 달린, 비안, 담이)으로 출발했지만, 이후 라온을 영입했고 같은해 12월 제이와 해나가 새롭게 합류하며 8인조로 거듭났다.

ANS 멤버들은 2020년 1월 'Say My Name'이라는 음원을 발매하기도 했지만, 2020년 7월부터는 더 이상 연예활동을 하지 않았다. 해나를 제외한 ANS 멤버 7명은 2020년 7월 에스엔에스엔터테인먼트에게 "귀사가 전속계약과 부속 합의서를 위반했으므로 위반사항을 시정하는 등 합당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한다"라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이에 대해 에스엔에스엔터테인먼트는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그러자 이들은 2020년 8월 에스엔에스엔터테인먼트에게 전속계약 및 부속합의서 위반을 이유로 "전속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취지의 통보를 했다. 

결국 양측은 합의점을 찾지 못해 법원의 판단에 기대게 됐다. 해나를 제외한 ANS 멤버 7명(7명 중 '비안'은 소송 도중에 '소취하'를 함)은 에스엔에스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효력 부존재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비안을 제외한 ANS 멤버 6명은 "에스엔에스엔터테인먼트가 ANS 멤버들에게 연예활동에 필요한 제대로 된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하지 못했다", "전속계약을 체결한 이후 ANS 멤버들에게 단 한 번도 정산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며, 매출과 비용을 정산한 기초자료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에스엔에스엔터테인먼트는 ANS 멤버들에게 투자를 유치해올 것을 요구했으며, 투자자와의 불필요한 만남을 주선했고 그 과정에서 성희롱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에스엔에스엔터테인먼트는 "ANS 멤버들에게 연예활동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충분히 제공해줬다", "ANS 멤버들의 연예활동에 따라 발생한 비용이 매출을 초과함에 따라 정산해야 할 수익이 존재하지 않았다", "에스엔에스엔터테인먼트는 ANS 멤버들에게 투자를 유치하라고 종용한 적이 없고, 우연을 가장해 투자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한 적도 없다"고 맞섰다. 




【법원의 판단】

[1] 1심 판결: ANS 승소

서울중앙지법 제33민사부(재판장 정철민 부장판사)는 ANS 멤버 6명이 소속사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효력 부존재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증거만으로는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가 ANS 멤버들에게 인적·물적 자원의 제공을 중단해 매니지먼트업무를 불이행하기에 이르렀다거나 투자자와의 불필요한 만남을 주선해 ANS 멤버들의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가 전속계약에서 정한 정산금 지급 및 정산자료 제공 의무 등을 위반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이로 인해 ANS 멤버들과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 사이에 전속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이미 무너져 계약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정도에 이르렀고, 전속계약을 해지하는 ANS 멤버들의 의사표시를 담은 내용증명이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에게 송달된 2020년 8월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의 귀책사유로 전속계약이 해지됐다고 판단했다.

[2] 2심 판결: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의 항소기각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으나, 2심 재판부는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가 추가로 제출한 증거들을 더해 보더라도 1심과 달리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추가한 다음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의 항소를 기각했다. 




☞ ANS 멤버들과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 간에 체결된 '전속매니지먼트계약' 즉 전속계약이란 소속사나 매니저가 연예인의 연예업무 처리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예인은 소속사나 매니저를 통해서만 연예활동을 하고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서는 연예활동을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계약이다.  이 전속계약의 경우 매니지먼트 업무를 맡은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가 사무처리에 대한 대가로 연예활동과 관련해 발생한 모든 수입을 자신이 수령한 다음 비용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 중 일부를 ANS 멤버들에게 지급하기로 했고, ANS 멤버들에게 전속료를 지급하는 등 민법에서 정한 전형적인 위임계약과 다른 특수성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 전속계약의 법적 성질은 민법상 전형적인 위임계약으로 볼 수는 없고 위임과 비슷한 무명계약에 해당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이 전속계약은 민법상 위임계약과는 달리 그 존속과 관련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강하게 결부돼 있으므로 연예인인 ANS 멤버들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전속계약이 기본적으로 위임계약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에 비춰 볼 때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볼 것은 아니다. 전속계약의 성질상 계약 목적의 달성을 위해 계약당사자 사이에 고도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전속계약에 따라 연예인인 ANS 멤버들이 부담하는 전속활동의무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깨어졌는데도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는 이유로 연예인에게 그 자유의사에 반하는 전속활동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연예인의 인격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계약당사자 상호 간의 신뢰관계가 깨어지면 연예인인 ANS 멤버들은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1)




이 사례에서 연예인인 ANS 멤버들과 연예기획사인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 사이의 성실한 수익 분배는 신뢰관계 존속을 위한 전제조건이므로, ANS 멤버들로서는 수익 분배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해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정산자료의 제공을 요구할 수 있고 이는 정산을 마친 결과 실제로 지급할 정산금이 있는지와 관계없이 인정된다.

그런데 ANS 멤버들은 2019년 8월 데뷔한 이후 약 1년의 기간 동안 3번의 앨범을 발매하고, 40여 회에 달하는 방송 출연을 하는 등 비교적 활발하게 연예활동을 했지만, 여러 차례에 걸친 ANS 멤버들의 정산자료 요구에도 불구하고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는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산금의 지급이나 정산자료의 제공을 거절했다. 이로써 ANS 멤버들은 정산금의 유무 및 금액 등을 확인하고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의 정산내역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다.

결국 에이엔에스엔터테인먼트는 신뢰관계를 파탄시킬 정도의 정산의무 또는 정산자료 제공 의무 위반을 저질렀다고 봐야 하고, 이는 전속계약의 해지사유에 해당한다.


  • 2025년 1월 11일

1) 같은 취지: 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7다258237 판결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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