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임용수 변호사
배우 이설이 자신의 사진을 수년 간 사용해온 주얼리 쇼핑몰과의 소송에서 최종 승소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촬영계약서상 사진 사용기간에 관한 약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무한정 사용을 위해서는 당사자 간에 명시적 약정이나 증명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광고모델의 초상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사실관계】
배우 이설은 지난 2016년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연예계에 데뷔했고, MBC '2018 연기대상'에서 드라마 '나쁜 형사'로 여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설은 2016년 6월 목걸이, 귀걸이 등 장신구 온라인 판매업을 영위하는 회사인 엘가플러스와 모델 촬영계약을 맺고 이듬해 6월까지 총 9회에 걸쳐 엘가플러스 판매 상품을 착용한 사진을 촬영했다. 촬영계약서에는 '저작권 및 사용권은 엘가플러스 소유, 초상권은 이설 소유', '엘가플러스는 상품의 촬영본을 인터넷에 게시·인화·전시·출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엘가플러스는 2017년 8월 이후 상품 판매를 위해 자사 쇼핑몰이나 제3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 이설의 상품 착용 사진을 게재했다. 문제는 촬영계약 체결 시에 계약기간을 별도로 지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설은 촬영계약에 따른 정당한 사진 사용 기간이 있더라도 이는 최대 6개월 내지 1년으로 봐야 하므로 사진 사용 기간이 끝났다고 주장했으나, 엘가플러스는 '해당 상품이 판매되는 기간'까지라며 맞섰다.
이에 이설은 2018년 12월 사진 게재 중단 등을 요청하는 초상권침해금지 및 방해예방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설은 소장 청구원인에서 "사진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계약당사자가 협의해야 하나 사진 사용에 자신의 동의가 없었다", "촬영계약에 따른 사진 사용기간을 '상품 판매 기간'으로 한다면 그 조건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돼 촬영계약 전체를 무효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엘가플러스는 "이설이 촬영계약 당시 사진의 상업적 활동을 인지하고 동의했고, 사진 사용기간은 해당 상품이 판매되는 기간으로 정했다"며 "자사의 사진 사용은 이설의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법원의 판단】
[1] 1심 판결 : 원고승소
1심(서울중앙지법)은 이설이 "쇼핑몰 등에 게시된 사진 게재를 중단하라"며 엘가플러스를 상대로 낸 초상권침해금지 및 방해예방 청구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1심은 촬영계약서의 표제를 '광고모델계약서'가 아닌 단지 '촬영계약서'로 하고 있고, 그 약정 내용 중에도 '촬영본의 제3자에 대한 상업적인 제공 및 2차 가공은 불가능하며, 상업적 활용 및 제3자에 대한 제공이 필요할 경우 계약당사자가 상호 협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촬영계약만으로는 엘가플러스가 상품 광고하는 등 사진을 상업적으로 사용할 권한이 없다고 봤다.
설령 「엘가플러스에게 상업적 사용 권한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광고모델 사진 사용기간을 무제한으로 정하는 경우는 이례적이고, 오히려 6개월 내지 1년으로 정하는 경우가 통상적」이라며 「마지막 사진 촬영일로부터 2년 10개월가량이 지났으므로 이미 통상적인 광고 모델 사용기간은 지났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1심은 또 「엘가플러스의 사진 사용은 이설이 허용한 범위를 벗어나 이설의 초상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엘가플러스는 현재 이뤄지고 있는 이설의 초상권 침해행위에 대한 배제조치로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쇼핑몰에 게재된 이설의 초상이 담긴 사진을 삭제하고, 엘가플러스가 제3자와의 법률행위를 통해 사진을 제3자 운영쇼핑몰 등에 게재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제3자에게 사진의 삭제를 요청할 의무를 부담하며, 아울러 엘가플러스는 이설의 초상권 침해에 대한 예방조치로서, 자사의 인터넷쇼핑몰을 비롯해 엘가플러스의 상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웹페이지에 이설의 초상이 담긴 사진을 게재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엘가플러스가 앞서 말한 이행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부작위의무를 위반한 경우 그 이행완료일까지 또는 그 위반행위 종료일까지 매월 1000만 원의 비율로 계산한 배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간접강제를 명했다.
[2] 2심 판결 : 원고패소
2심(서울고법)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2심은 「사진을 인터넷에 게시한다는 것은 엘가플러스가 상품 판매를 위해 사진을 사용하는 것임이 명백하며, 이에 따라 이설의 초상이 쇼핑몰 웹사이트에 게재되거나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에 노출되는 것은 당연히 전제돼 있다」며 「엘가플러스의 사진 사용은 일반의 상식과 거래 통념상 이설이 허용했다고 보이는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설의 동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촬영계약서상 '제3자에의 제공 및 2차 가공', '상업적 활용'이나 '제3자에의 제공'의 의미는 촬영본을 제3자에게 판매하는 등 촬영본 그 자체를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는 경우를 예정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2심은 또한 「엘가플러스가 상품을 판매하는 기간 동안 사진 사용을 계속하는 것에 이설의 동의가 있었다고 보는 이상 이설의 해지통고가 적법한 해지권 행사라고 볼 수 없고, 상품 판매 기간 동안 사진 사용을 계속 하기로 한 합의가 불법조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촬영계약이 유효하게 존속한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2심은 엘가플러스의 사진 사용이 이설의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3] 대법원 판결 : 파기환송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촬영계약의 내용이 사진에 포함된 상품을 판매하는 동안이며 기간 제한 없이 엘가플러스에게 사진 사용권을 부여하는 내용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초상권을 사실상 박탈해 이설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명시적 약정이나 증명이 있어야 이를 인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 촬영계약에 사진 사용기간에 대해서 아무런 내용을 두지 않고 있고, 엘가플러스가 이설에게 상품 판매를 위해 사진이 사용된다는 점을 고지했다고 하더라도 기간 제한 없이 무한정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정까지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엘가플러스가 상품을 판매하는 동안이면 기간 제한 없이 사진 사용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심으로는 엘가플러스에게 사진의 사용을 허용했다고 볼 수 있는 합리적인 기간을 심리·판단해 이를 바탕으로 사진 사용이 이설의 초상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며 「그럼에도 엘가플러스가 상품을 판매하는 동안이라면 기간의 제한 없이 사진 사용을 허용했음을 전제로 사진 사용의 전부가 이설의 초상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초상권 및 계약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4] 파기환송후 원심 : 원고일부승소(손해배상액 4550만 원)
광고모델의 일반적인 계약기간이 6개월에서 1년 정도이기는 하지만, 이 사례에서는 계약기간을 사진의 최초 게재일부터 2년 6개월까지로 봤다.
따라서 엘가플러스가 사진을 쇼핑몰 등에 게재되기 시작한 2017년 8월부터 2년 6개월이 지난 이후에도 이설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사진을 계속 사용함으로써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봤다. 다만 손해배상 액수에 대해서는 광고모델이 자신의 초상이 무단으로 사용됨에 따라 입은 손해는 자신의 초상이 상업적으로 사용됨을 승낙하는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재산상 이익에 상당하는 금액으로 봐야 함이 원칙이지만, 이설과 엘가플러스 간의 촬영계약은 전속적 성격을 가지는 관련 광고계약과는 달리 각종 의무를 부담하지 않고 있는 점과 이설의 사진이 인터넷에 게재됨으로써 모델 경력이 인정되는 등의 이익이 있는 점, 그 밖에 사진의 내용과 양, 이설이 사진 촬영의 대가로 받은 금액, 사진의 합리적인 사용기간 이후 무단 게시 당시 이설의 지명도, 엘가플러스가 영위하는 사업의 특성, 거래 관행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엘가플러스가 이설에게 배상해야 할 재산상 손해배상액으로 4050만원으로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봤다. 이와 함께 정신적 손해(위자료) 500만 원도 인정했다.
[5] 파기환송 후 대법원판결 : 심리불속행기각
엘가플러스가 다시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심리불속행기각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대해 함부로 촬영 또는 그림 묘사되거나 공표되지 않으며 영리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데, 이런 초상권은 헌법 제10조에 의해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다. 따라서 타인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이 나타나는 사진을 촬영하거나 공표하고자 하는 사람은 피촬영자로부터 촬영에 관한 동의를 받고 사진을 촬영해야 하고, 사진촬영에 관한 동의를 받았다 하더라도 사진촬영에 동의하게 된 동기 및 경위, 사진의 공표에 의해 달성하려는 목적, 거래관행, 당사자의 지식, 경험 및 경제적 지위, 수수된 급부가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 사진촬영 당시 당해 공표방법이 예견 가능했는지 및 그런 공표방법을 알았더라면 당사자가 사진촬영에 관한 동의 당시 다른 내용의 약정을 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지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사진촬영에 관한 동의 당시에 피촬영자가 사회 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상 허용했다고 보이는 범위를 벗어나 이를 공표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에 관해서도 피촬영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경우 피촬영자로부터 사진촬영에 관한 동의를 받았다는 점이나, 촬영된 사진의 공표가 사진촬영에 관한 동의 당시에 피촬영자가 허용한 범위 내의 것이라는 점에 관한 증명책임은 그 촬영자나 공표자에게 있다.1)
한편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떤 계약 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해야 하나, 그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계약이 이뤄지게 된 동기와 경위, 당사자가 계약으로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계약 내용을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특히 한쪽 당사자가 주장하는 약정의 내용이 상대방에게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중대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경우에는 그 약정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2)
따라서 계약당사자 간 촬영계약의 내용이 광고주가 그의 의사결정에 따라 사진에 포함된 상품을 판매하는 동안이면 기간의 제한 없이 광고주에게 촬영 사진의 사용권을 부여하는 내용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사진의 광범위한 유포 가능성에 비춰 광고 모델의 사진에 관한 초상권을 사실상 박탈해 광고 모델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에 관한 명시적 약정 내지 그에 준하는 사정의 증명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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