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임용수 변호사
그룹 신화 출신 가수 이민우에게 "성추행 사건 무혐의를 받게 해주겠다"며 접근해 가스라이팅(gaslighting, 심리적 지배)하며 26억 원을 편취한 방송작가가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이민우로부터 가로챈 돈을 방송작가 자신 또는 불상의 계좌로 이체한 행위 자체는 이민우의 법익을 새롭게 침해한 것이 아닌 만큼 처벌할 수 없다('불가벌적 사후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것으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선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약칭: 특정경제범죄법]위반(사기) 및 변호사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직 방송작가 최 모 씨에게 징역 9년과 26억 원 상당의 배상명령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1)
최 씨는 지난 2019년 6월 이민우가 서울 강남구의 한 술집에서 여성 2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검사들과 친분이 없는데도 "검찰 내부에 인맥이 있으니 무혐의를 받게 해주겠다", "고위직 검사에게 줄 돈이 필요하다"며 사건 관련 청탁·알선을 명목으로 돈을 요구해 이민우로부터 16억 원을 받아 갔다. 최 씨는 또 같은 해 12월 이민우가 무혐의 처분을 받자 이민우에게 다시 접근해 "검사들이 처분을 번복하려고 한다"며 돈을 더 요구해 10억 원과 명품 218점을 받아 가는 등 26개월에 걸쳐 총 26억 원 상당의 돈을 편취했다. 최 씨는 이민우 누나의 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민우는 최 씨를 고소했고, 최 씨는 특정경제범죄법(사기)위반과 변호사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최 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9년을 선고했고, 동시에 26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1심은 "피해자는 평생 모아 온 재산을 잃고 경제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며,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피해 회복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까지 피해금액이 피해자에게 전혀 반환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도 1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쌍방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을 하며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했고 피해자는 위축된 상태에 있었던 것이 인정된다"며 최 씨가 이민우를 가스라이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불가벌적 사후행위에 대해선 별도의 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불가벌적 사후행위란 주된 범죄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면 사후행위는 별개의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대법원은 최 씨가 "무혐의 처분이 번복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며 이민우를 속여 대출금을 교부받아 편취한 행위에 대해 특정경제범죄법(사기)위반죄 및 변호사법위반죄가 성립한 만큼, 이미 취득한 대출금 일부를 피해자의 다른 계좌들을 거쳐 이체한 것에 대해서는 별도로 특정경제범죄법(사기)위반죄 및 변호사법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취득한 대출금의 일부를 피해자의 다른 계좌들을 거쳐 피고인이나 성명불상자 명의 계좌로 각 이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피해자에 대한 법익 침해가 증가했다거나 새로운 법익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려워 불가벌적 사후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심은 문제된 이체금 부분들이 대출금이 아닌 별도의 금원으로서 피고인의 이 부분 행위로 피해자에 대한 법익 침해 증가나 새로운 법익 침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 등에 관해 더 심리한 후 이들 부분의 특정경제범죄법(사기)위반죄 및 변호사법위반죄의 성립 여부에 대해 판단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에 이르지 않은 채 피고인에 대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는 불가벌적 사후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봤다. 다만 일부 파기를 하지는 않았다. 원심이 문제된 이체금 부분들이 최 씨의 나머지 범죄사실과 포괄일죄 및 상상적 경합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해 하나의 형을 선고하고 부분 편취액을 포함해 배상명령을 했다고 지적하며 「원심판결 전부(이유무죄 부분 및 배상명령 포함)를 파기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 사기(형법 제347조)의 죄를 저지른 사람이 그 범죄행위로 인해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때는 가중처벌한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50억원 이상일 때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각각 처벌한다.
이 사례에서 1심과 2심 법원은 가해자 최 씨에게 9년의 유기징역 선고과 동시에 배상명령(26억3639만 원)도 내렸다. 배상명령은 1심 또는 2심의 공판절차에서 상해, 중상해, 특수상해(존속상해 및 존속중상해 제외), 상해치사, 폭행치사상(존속폭행치사상 제외), 과실치사상의 죄(제26장), 강간과 추행의 죄(제32장), 절도와 강도의 죄(제38장), 사기와 공갈의 죄(제39장), 횡령과 배임의 죄(제40장), 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공중 밀집 장소에서의 추행, 성적 목적을 위한 다중이용장소 침입행위,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허위영상물 등의 반포등, 촬영물과 편집물 등을 이용한 협박·강요,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 미수범, 허위영상물 등의 반포등죄 미수범, 촬영물과 편집물 등을 이용한 협박·강요죄 미수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아동·청소년 매매행위(제12조),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요행위 등(제14조)의 죄 중 어느 하나에 관해 유죄를 선고할 경우, 법원이 직권에 의해 또는 피해자나 그 상속인의 신청에 의해 피고사건의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직접적인 물적 피해, 치료비 손해, 위자료의 배상을 명할 수 있다.2)
배상명령을 신청하려면 배상명령신청서를 작성해 가해자에 대한 2심(항소심) 변론 종결 전까지 가해자가 재판을 받고 있는 법원에 제출하면 된다. 배상명령의 절차 비용은 국고 부담이 원칙이므로 신청서에 별도로 인지(印紙)를 붙일 필요는 없다.3)
2)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 참조.
3)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6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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